경원콤프레샤

묻고답하기 HOME > 고객센터 > 묻고답하기
 
작성일 : 20-10-27 03:20
[故김수환 추기경 추모 특집] 1987년 6월 동아일보 미공개 인터뷰 전문
 글쓴이 : 이필립33
조회 : 0  

2009.04.01 통권 595호(p82~102)

 

[故김수환 추기경 추모 특집]
1987년 6월 동아일보 미공개 인터뷰 전문(150매)
“이 사람들이 지금 박정희 정권보다 더한 짓을 하고 있다”“‘최루탄 정권’이 살 길은 대(對) 국민 사죄와 직선제 개헌뿐”
여영무│뉴스앤피플 대표·전 동아일보 논설위원 kayamt21@hanmail.net│
 
●뭐든지 힘으로 해결하려는 이 정부의 태도가 문제
●농성학생들 강제진압하려면 나부터 잡아가라
●‘해방’ 빠진 기독교 신학은 아무 쓸모없는 학술토론
●폭력시위는 민주화에 도움 안 되고 탄압 빌미를 줄 뿐
●미국의 공 인정하지만, 남의 나라 내정에 개입해선 안 돼
●좌경을 권장해서야 안 되겠지만, 죽일 놈처럼 몰아붙이지는 말아야
 
 

1987년 6월18일 필자와 인터뷰하는 김수환 추기경.

1987년은 군정을 종식시키고 직선제 민주화로 나아가는 분수령의 해였다. 1987년 1월 서울대생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에 이은 6월9일 연세대생 이한열군 최루탄 사망사건, 그리고 6월10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 시위군중 100만이 모인 ‘6·10 민주항쟁’은 완강한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약속하는 ‘6·29선언’을 받아내는 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했다.

 

이듬해 정권 이양과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있던 전 정권은 그해 1월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 후 연일 계속된 학생시위로 궁지에 몰렸다. 내부에서는 명동 성당에서 농성하는 학생들을 진압하기 위해 군인을 동원해야 한다는 강경파와 경찰력만으로 진압이 가능하다는 온건파로 의견이 갈렸다. 전두환 정권은 군인을 동원하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정한다.

 

그러나 김수환 추기경과 정의구현사제단의 죽음을 각오한 저항에 부딪혀 경찰력마저 성당 안으로 진입하지 못했다. 전두환 정권은 결국 직선제 개헌 등 시국문제를 정치적으로 풀기로 결론지었다. 이것이 이른바 ‘명동 해결’ 방식이다. ‘명동 해결’ 방식은 유신철폐 운동 때부터 중요한 고비마다 김수환 추기경의 탁월한 정치적 균형감각과 우뚝한 경륜이 중심추로 떠받치지 않았더라면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 마지막 가는 길, 2월20일 명동대성당.

1987년 6월18일 오후, 당시 ‘동아일보’ 논설위원이던 나는 명동성당 주교관에서 김수환 추기경을 만나 시국 타개 방식에 대해 장시간 인터뷰했다.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치러진 6·10민주화항쟁 기념행사 직후 민주화를 위한 열망이 오뉴월의 뜨거운 태양열처럼 전국을 달구던 때였다.

 

최루탄과 로만칼라

 

명동성당 앞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경찰과 성당 구내 농성학생들이 살벌하게 대치하고 있었다. 언제 쏘았는지 최루탄 가스 냄새가 코를 찔렀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날 오후 검은 테 안경과 새하얀 로만칼라에다 흰색 추기경 수단 차림을 한 김수환 추기경은 매우 건강하고 활달한 모습에 명랑한 표정이었다. 그는 설령 까다로운 질문일지라도 피하지 않고 모든 질문에 주저 없이 솔직하고 시원스럽게 답변해주었다. 그의 말과 손짓, 표정에는 민주화의 시대적 필연성과 시국 문제 해결에 대한 확신, 그리고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그날의 인터뷰는 6월19일자 ‘동아일보 1면과 3면에 보도됐으나, 서슬 퍼런 전두환 정권 아래서 상당 부분이 누락됐다. 무려 22년간 간직하고 있던 미공개 대담 전문(全文)을 김수환 추기경 선종 후에 공개함으로써 귀중한 자료로 남기고자 한다.(평생토록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어버이이자 친구였으며, 인권보호와 민주화의 살아 있는 보루였던 큰 어른 김수환 추기경께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 바쁘신데 귀중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려운 문제를 이야기하시려는 것 같은데,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최근 명동성당 농성사건이 원만히 해결된 데 대해 항간에 칭찬이 자자합니다. 최근의 정치문제들도 이번 명동성당 해결방식으로 처리되면 좋겠다는 얘기까지 나옵니다. 이번에 김 추기경님을 비롯해 정의사회구현전국사제단, 그밖에 가톨릭계 여러분이 애를 많이 쓰셨는데, 어려움이 많았으리라 생각합니다.

 

“학생과 경찰이 충돌할 뻔했습니다만 다행히 긍정적인 방법으로 해결됐습니다. 갑자기 성당 안으로 학생들이 뛰어들어올 때만 해도 일이 이처럼 어렵게 전개되리라고는 전혀 예상을 못했어요. 여기서 이렇게 창밖을 내다보고 있으면 학생들이 성당 안으로 넘어오고, 밖에서 서성대는 학생들도 있었고요. 처음엔 학생이 1000여 명 있었지 않나 싶어요. 그러다 500명 정도로 줄어들었습니다.

 

이 정부가 뭐든지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게 문제입니다. 정부는 학생들을 비롯한 저항세력을 힘으로 원천봉쇄하려고 시도했고, 그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적나라한 힘 앞에서 이 학생들을 어떻게 다치지 않게 보호할지, 그러기 위해 어떻게 하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나름대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학생들의 태도도 상당히 완강했어요. 자기들 소신대로 ‘4·13호헌(간접선거)’ 철폐와 민주화가 이 땅에 실현될 때까지 이 자리(명동성당)에서 투쟁하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상황이 이러하니 강경 대응이 전혀 먹혀들지 않을 것이라고 정부를 설득했지요.

 

2월18일 김수환 추기경을 조문한 동아일보 임원진.

신자들의 민주화투쟁 헌금

 

렵게 정부를 설득했는데, 다음 문제는 학생들이 거기에 따라주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려움이 있었어요. 학생들은 학생들 나름대로 밤새 열띤 토론을 하고 참으로 진지했어요. 결과적으로 학생들이 우리의 설득을 수용함으로써 이른바 ‘명동 해결’ 방식이 가능했던 거죠. 양쪽에서 한 발짝씩 물러선 것이 시국을 풀어나가는데 작으나마 힌트를 주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또 하나, 당시 정부의 초강경대응에 대해 감 잡을 기회가 밤중에 있었어요. 정부가 초강경 방식(무력진압 및 구속수사)을 실행하기에 앞서 일단 교회의 협조를 구해보려 했던 것 같아요. 강경 무력진압에 대한 명분 쌓기인 셈이죠. 이렇게까지 노력했음에도 어쩔 수 없다 하는. 그때 온 사람들(정부 관계자)에게도 그런 얘기를 했어요. 절대 힘에 의한 해결은 안 된다고 강하게 말했고, 정부가 볼 때는 이 학생들이 범법자이고 용납의 여지가 없어 보이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고 설득했어요.

 

신부님들이 성당 안으로 들어온 학생들을 마음으로 껴안으면서 폭력을 써서는 안 된다고 설득했거든요. 학생들이 의지하는 폭력이라는 게 돌멩이와 화염병인데, 그것마저 손에서 놓으면 의지할 곳이 전혀 없어지는 거예요. 그럼에도 신부님들이 학생들의 고집을 꺾어 돌멩이와 화염병을 내려놓고, 바리케이드도 철거하도록 만들었어요. 그들에겐 돌멩이와 화염병이 저항의 상징이라지만, 시민들에게 불편을 줘가면서까지 들고 있어서는 안 되니까요. 이런 설득이 먹혀들어가는 걸 보면서 느낀 것은, 이 젊은 학생들이 극렬하고 과격하지만 인내를 갖고 설득하면 대화가 통한다는 점이에요. 학생들과의 대화가 쉽지는 않지만, 불가능하지 않다는 걸 확인한 거죠.

 

그래서 그때 온 사람들에게 초강경 방식을 써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대학교수든 정부 인사든 신부들이 기울인 정도의 사랑으로 대화하려고 노력했더라면 학생들이 저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했어요. 내가 우리 신부님들을 자랑하려는 게 아닙니다. 대화에 사랑이 부족했다는 것을 일깨우려는 겁니다. 하여튼 이해와 사랑만 있으면 누구하고든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이번 명동 해결방식에서 배웠습니다.

 

문제 해결에는 학생들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도 크게 기여했다고 봅니다. 학생들이 자꾸 들어오는데, 이게 장기화할 경우 이 학생들을 어떻게 먹일 것이냐가 큰 걱정거리더라고요. 그런데 한 신부님이 그건 걱정 없다고 그래요. 라면이고 뭐고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는데다, 여기 (명동성당 안에서 천막을 치고 시위 중이던) 상계동 철거민들과 학생들 호흡이 잘 맞아 상계동 아줌마들이 열심히 밥을 해주고 수녀님들도 밥을 해주고 있으니 걱정할 게 없다는 거예요. 신문에도 났지만 헌금이 2000만원 들어왔어요. 그중 1000여 만원은 지난 주일(6월14일) 하루 동안 모아졌어요. 대신 미사 때 내는 주일헌금은 대폭 줄었지만. 신자들이 하느님에게 낼 것도 민주화투쟁을 위한 헌금으로 냈더군요. 시민들이 직접 데모에 동참하는 것도 목격할 수 있었고, 전투 경찰에 포위돼있을 때는 지나가면서 격려 박수를 쳐주고, 돈을 쥐여주면서 변변치 않지만 시위하는 학생들한테 주라고 하는 등 수녀님들을 통해 전해 들은 얘기가 참 많아요. 시민들의 그러한 자발적인 호응이 문제해결에 상당히 큰 기여를 했죠.”

 

“미봉책 쓰면 큰 불행 올 것”

 

▼ 지난해(1986년) 2월, 필리핀이 ‘피플파워’로 민주화혁명에 성공했습니다. 피플파워로 국민의 의사(정권교체)를 관철시켰죠. 직선제 개헌 같은 구체적인 민주화의 가능성을 열어 보이는 것이 피플파워인 것 같습니다.

 

“그렇죠, 그게(피플 파워) 있어야 난국을 타개하지, 그것 없이 학생들만으로는 민주화가 어렵습니다. 건전한 시민 참여가 가세할 때 (위기를 타개할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해요”

 

▼ 시민의 참여가 결정적이겠군요.

 

“제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 내년 정권교체와 올림픽을 앞두고, 지금의 난국을 원만히 타개할 방법이 있을까요?

 

“제가 평소 주장하는 것처럼 정권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위정자 등 모두가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도덕이나 윤리 강의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이것이 해결책이고 현실입니다. 전두환 대통령 측에서 깊이 깨닫고 자신을 비워야 합니다. 시민들의 반응을 보더라도 정부가 대오각성해야 합니다. 국민에게 사죄하는 자세로 ‘우리가 정권을 잡지 않아도 좋습니다’ 하고 나온다면 현 시국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봅니다. 이번에도 민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이제껏 해온 대로 미봉책을 쓴다면 큰 불행을 가져올 거예요. 제가 이미 여러 번 말했습니다. ‘당신들 죽지 않으려거든 제대로 해라’라고까지 했어요. 그런 표현까지 쓴 것은 정부와 여당이 계속해서 민심을 거스르는 이상 결국은 국민이 이 정부를 거부할 것이기 때문이죠.”

 

▼ 마음을 비우라는 것의 구체적인 의미가 뭡니까.

 

“전 대통령을 비롯해 권력을 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 기대하는 것을 비워야 한다는 얘깁니다. 정말 공정한 민주헌법에 따른 선거(직선제)를 통해, 국민의 판단에 의해 (기꺼이) 물러날 수 있다는 자세로 일을 추진해야 합니다.”

 

▼ 지금으로선 말하자면 잠실체육관식 선거를 통해 노태우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되도록 하는 방식인데요.

 

“4·13호헌 선언을 철회해야죠.”

 

▼ 철회라면?

 

“직선제 개헌 해야죠.”

 

김수환 추기경은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해 사형수가 된 이들의 구명을 위해 여러 차례 전두환 대통령을 만났다. 사진은 회고록에 실린 면담 장면. 오른쪽은 광주대교구장 윤공희 대주교.

“1년간 국민을 속였다”

 

▼ 직선제 개헌이 아니면요?

 

“직선제 개헌 아니면 안 됩니다. 국민 전체의 뜻이 직선제 개헌에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영도자를 스스로 뽑겠다는 욕구가 상당하지 않습니까? 현실적으로 그것만이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내각제가 민주주의의 기틀을 세울 수 있고, 오히려 더 민주주의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게 틀린 얘기라고 할 수는 없지만 지금 정부가 내각제를 내놓은 것이 정말 민주주의를 하고 싶어서인지 그게 의문입니다. 그러면 지난 1년간 뭘 했느냐? 개헌을 위해 추진한 게 아무것도 없거든요. 결국 직선제를 반대하기 위해서, 시간 벌기 위해 전술상 내놓은 것이지 처음부터 타협할 의도는 전혀 없었지 않느냐는 겁니다. 민주주의 할 뜻도 없으면서 1년간 국민을 속이고 ‘4·13호헌’ 기회만 노리고 있었던 것 아닙니까? 건국대 농성 사건을 비롯해 지난 1년 동안 정부는 강경일변도였지, 야당이나 학생들과 대화 한번 제대로 했습니까? 국회를 한번 제대로 열었습니까? 그들이 대체 민주주의를 위해서 뭘 했습니까? 구속자 한 명이라도 석방했습니까?”

 

▼ 대화를 한다면 누가 누구와 대화해야 합니까.

 

“결국 실질대화니까 정부가 김영삼씨와 대화해야 한다고 봅니다.”

 

▼ 김대중씨는 어떻습니까.

 

“김대중씨하고도 해야죠.”

 

▼ 전 대통령과 김대중·김영삼 실세대화를 해야 한다는 말씀이죠?

 

“실세대화를 해야죠. 제 생각에 지금이라도 전 대통령이 그렇게 나오면 박수를 받을 겁니다. 그렇게 대범하게 나오고, 비는 자세, 봉사하는 자세를 보인다면 산다고 봅니다. 그게 자기를 살리는 길이죠. 그렇게 해서 국가를 안정시키고 내년 2월에 명예롭게 퇴진한다면….”

 

▼ 정부와 여권에서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그건 자기들 욕심에서 하는 얘기죠.”

 

▼ 야당에선 정부가 88 서울올림픽을 핑계 삼아 민주화를 미룬다고 보죠.

 

“이대로는 서울올림픽 후에도 민주화가 안 될 게 뻔하잖아요. 올림픽을 치를까 말까 하는 위기에 몰릴 수도 있어요. 그들이 만든 법대로 대통령선거를 한다 하더라도 계속 거부당할 테니까요. 어찌될지 빤히 보이는데도 무리하게 밀고 나가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죠. 그건 나라를 위한 것도, 자기들을 위한 것도 아니고, 올림픽을 위한 것도 아니에요.

 

올림픽은 국제사회에 대한 약속이니까 잘 치르도록 노력해야죠. 그러려면 지금부터 민주화 일정을 잡아놔야죠. 대통령이 결정적인 태도를 보여준다면 결국 그것을 통해서 많은 것을 얻으리라고 봐요. 오히려 명예롭게 퇴진할 겁니다. 지금 그 사람들에게 광주사태의 책임을 묻고 있지 않아요. 우리 국민이 참 선량하거든요. 그 사람들이 마음을 비우면, 거기에(광주사태) 대해서도 아주 관대하게 처리될 것이 아닙니까? 이들이 그리한다면, 나중에 국민이 그것(광주사태)에 대해 묻더라도, 당연히 물어야 할 것이지만, 결국은 민주화를 이루어놓았으니 국민적 단결을 위해서도 그들에게 관용과 용서를 베풀어야 한다고 봅니다.”

 

“학생들 잡혀가면 신부 동참할 것”

 

▼ 명동성당 농성사건이 해결된 뒤에 특별성명이 있었지요. 언론엔 짤막하게 보도됐습니다만, 사제단 성명엔 ‘독재체제와 반민족적, 반민중적, 반민주적 행태는 대화와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거부의 대상이다’ 하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정의로운 사회를 앞당기기 위해서 시민불복종운동의 지속적 실현을 제창한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가톨릭이 정치 전면에 나선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김승훈 신부의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폭로도 그렇고요. 가톨릭의 현실 정치 참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5월18일 김승훈 신부의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폭로에 대한 사제단의 반응은 정치적 동기와 무관합니다.”

 

▼ 사회구원 차원이죠?

 

“그렇습니다. 이 사회가 정의롭게 구원될 때 우리 몸으로 보호해야 할 우리 형제자매와 동포들을 보호할 수 있고, 인간다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 그런 차원이죠.”

 

▼ 사회구원이 잘 돼야 영적구원도 잘 될 수 있다고 보시는 건가요?

 

“그렇죠. 어떤 정치적인 동기에서 정당을 만들겠다거나 정치가들 모양새로 나서겠다거나 시국을 리드하겠다는 게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그러니까 이번에 학생들이 성당에 들어왔을 때도 사제단은 진실로 만일의 경우 학생들이 잡혀가면 함께 갈 용의가 있었습니다. (정부에서) 사람이 왔을 때도 제가 그랬어요. 그렇게(강경 진압) 한다면, (경찰이) 나를 맨 먼저 볼 것이다. 그 다음엔 우리 신부님들이 그럴(잡혀갈) 용의가 있었고요. 그러니까 사제들의 그런 생각은 학생들을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지 정치적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우리 신부들이 그런다고 무슨 정치적 이권이 따르겠습니까?”

 

▼ 서양 중세 때는 가톨릭이 부패한 나머지 정치에 의해 정화됐고, 근세에는 거꾸로 정치가 부패하고 사회적으로 부조리가 만연하니까 종교가 개혁에 앞장서는 형국입니다. 정치와 종교의 관계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정부를 포함해 이 사회가 종교에 대해 기대하는 것이 대단히 무겁습니다. 종교가 사회의 빛과 소금 구실을 해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소금의 구실이라면 부패를 막는 것이고, 빛이 된다면 정의로서 혹은 사랑으로서 진실을 말함으로써 어둠에 등불을 밝혀주는 것, 그것을 기대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종교에 대한 기대라면, 거기서 정치 제쳐놓고, 경제도 제쳐놓고, 다른 분야를 따로 떼어놓고 등불이 되라, 빛이 되라 강요할 수 없죠. 그런 점에선 정치와 종교가 상호 연결돼 있으니까요.

 

더군다나 오늘날은 정치가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다시피 하잖아요. 정치가 일반 가정과 개개인의 생활까지 지배하다시피 하잖아요.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 가족관계, 부부관계까지도 지배하고 있어요. 부모자식 관계도 정치가 지배하고 있고요. 정치 때문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희생되고 있습니까? 정치 때문에 서로 가까워야 할 사람들이 얼마나 소원해지고 있습니까?

 

인간생활에 이렇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정치이니, 좋은 정치라면 얼마든지 인간다운 사회를 만들어나갈 텐데 말입니다. 정치가 거꾸로 일방통행을 하니까 각 가정과 개인의 사생활에까지 나쁜 영향을 끼쳐 결국 파탄을 가져오는 것 아니겠어요? 이런 때 교회가 정치에 대해 비판적이라고 해서, ‘교회가 정치에 관여한다’고 하면 그건 모순이죠.”

 

1979년 11월 박정희 대통령 국장(國葬)미사를 집전하는 김수환 추기경.

전두환과의 비밀회동

 

▼ 한국가톨릭에서 정치 및 사회 문제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행동하는데, 이것이 정치개혁의 노력 아닙니까. 종교가 억압된 사회를 해방한다는 뜻도 포함되겠죠. 이것이 소위 남미에서 말하는 ‘해방신학’인데, 한국에 이런 해방신학이 적용된다고 보십니까(당시 남미에서는 신부가 해방이란 이름으로 총을 들고 반정부 게릴라전에 참가하기도 했다).

 

“해방이라는 것이 사실은 그리스도교적인 관념입니다. 과거, 중세 때처럼 그리스도교가 그리스도교답지 못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해방 메시지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근래 들어 ‘해방’이 그만 마르크시즘적으로 나가버렸어요. 하지만 원래 해방은 그리스도교적인 말입니다. 누가복음 4장18절에 나오는 말씀에 보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밝히셨거든요. 주께서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눈먼 이들의 눈을 뜨게 해주고 또 억눌린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고 묶인 사람들에게 해방을 주고…. 즉 해방을 알리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 당신의 사명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니까 그리스도교적인 신학이 인간에게 해방을 주는 게 아니라면 그건 신학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구원은 인간에게 해방을 가져다주는 기쁜 소식인데, 인간다운 인간으로 해방을 가져다주는 것이라야 해방의 참 메시지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야만 정말 그리스도교적인 신학이지, 해방이 빠져버리면 그냥 학문이고 학술토론을 위해 좋을지 몰라도 인간에게는 아무런 쓸모도, 아무런 메시지도 없는 것입니다.”

 

▼ 오늘날의 한국가톨릭 역시 말하자면 억눌린 자, 묶인 자들을 풀어주기 위한 해방신학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해방신학이란 말을 사람들이 자주 오해하는데, 해방신학은 ‘해방신학적인 태도’ 뭐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고, 정말 복음적 종교적 자기반성과 사명의식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정치 관여, 이런 뜻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오해를 받으면 그것은 어떤 의미로, 물론 우리 자신을 감히 예수님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예수님이 그 시대에 전한 해방의 메시지가 순수한 종교적인 메시지였으며, 메시아적 메시지로서 인간구원을 위해서 사시는데도 전부 정치적으로 해석되고, 민중을 선전 선동하는 죄목이 붙고, 국가를 전복시킨다는 둥 여러 가지 죄목이 붙어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것과 마찬가지죠.”

 

▼ 2년 전인가 ‘뉴욕타임스’에 이런 기사가 실렸습니다. 한국의 정치적 교착상태와 위기를 해결하려면 전두환 대통령과 양 김씨(김영삼, 김대중), 김수환 추기경님과 주한미국대사 등이 5자회담을 해서 (민주화를 달성하는) 정치적 해결책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요지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기왕 추기경님과 한국가톨릭이 사회개혁을 위해 나선 마당에 해방 차원에서 어떤 적극적인 제안이나 정치적 해결방안을 구상해보진 않았습니까.

 

“여기에서 일일이 누구하고 어떻게 해야 한다 하는 얘기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그동안 저 나름대로 정부 당국에 몇 차례 여러 경로를 통해 호소하다시피 했습니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벌써 재작년(1985년)부터 제안했습니다. 어떤 때는 저 사람들이 나를 안 만날 것 같아서 서면으로 작성해주면서까지….”

 

▼ 그런 서면요청이 전두환 대통령에게 전달됩니까.

 

“그건 묻지 마세요. 그 사람한테 주었어요.”

 

“전투경찰과 최루탄으로 유지되는 정권”

 

▼ 반응은 어땠습니까.

 

“이것도 비밀스러운 얘긴데, 그 사람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 ‘추기경님 걱정 마십시오. 아무 염려 없습니다’ 그래요. 그래 제가 나오면서 마음이 아주 쓸쓸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 단독으로 만났습니까.

 

“물론 그렇죠. 어느 날 제가 북한산 쪽에 갔다가 전투경찰들이 훈련하는 것을 보았어요. 갑자기 든 생각이 ‘아 저 사람이 저걸 믿고 걱정하지 말라 그러는구나’ 싶었어요. 솔직히 이 정권에서 전투경찰 빼보세요. 뭐가 남습니까? 요새는 한걸음 나아가 전투경찰 있다 하더라도 최루탄 없어 보세요. 무슨 힘이 남아요? 전투경찰과 최루탄으로 유지되는 게 현 정권이죠.”

 

▼ 1987년 6월18일 현재 시점에서 볼 때, 민주화의 가능성이나 정국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전망이 있습니까. 앞으로 평화적 정권교체가 가능하겠습니까.

 

“전망은 보이는데 그 전망을 따라가주느냐가 관건이죠. 저는 문제가 굉장히 복잡해 보이지만 실상 복잡하지 않다고 봅니다. 지금 전개되는 정치상황이 답이 안 보이는 난국이라고 하지만 제 생각엔 그렇지 않아요. 정치하는 분들이 참으로 단순하게 생각하고, 대다수 국민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무엇을 원하는지 따라가면 문제는 단순하게 해결됩니다. 그런데 그걸 따라가지 않으면 민중은 결국은 단호한 거부 세력이 됩니다. 지금 그렇게 나타나고 있죠. 민의를 따라 가지 않고 민의를 자꾸 조작하니까 문제가 점점 커지는 거죠.

 

오늘 ‘동아일보’에서 봤나, 어느 기자가 정치면에 썼던데, 자기네 당 국회의원이라도 모아놓고 자유롭게 토론을 시키면 민의를 대변할지도 모른다, 그렇게라도 좀 해봐라. 정부가 그렇게라도 하면 민의의 소재를 알 수 있을 것 아닙니까? 그리고 저 사람들 만나서 얘기할 때 내가 늘 부탁하는 게 있어요. ‘동아일보’에 누가 쓴 글 혹은 ‘조선일보’에 누가 쓴 글을 읽어봐라. 그것대로 하면 정치 잘 된다. 다른 방법을 뭘 쓸까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그것(‘동아일보’ 혹은 ‘조선일보’) 읽어보고 그대로 따라하면 된다. 그런데 이 사람들 권력에 눈이 멀어지는 것 같아요.”

 

▼ 권력을 잡으면 앞이 가려서 도대체 안 보이는 모양이죠.

 

“오랜 이야기도 아니지 않습니까? 박정희 대통령 말로가 어땠는지 불과 10년도 안 됐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지금 그보다 더하고 있어요.”(김수환 추기경은 1974년 육영수 여사 장례미사와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장례미사를 집전했다)

 

▼ 현 정권이 전투경찰과 최루탄으로 유지되는 정권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심한 말인가(웃음)? 진짜 그런 것 같아요.”

 

 

1987년 6월1일 명동성당 앞 민주화 시위.

“먼저 총 빼들어 정권 잡은 것 아니냐”

 

▼ 그런데 그것을 좀 더 발전시키면 미국의 시거 국무차관보가 지난 2월6일 우리나라의 민주화에 대해 연설한 것이 있습니다. 거기서 문민화라는 말을 강조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980년 1월1일 자기(전두환) 말로는 나한테 세배인사차 왔다고 그랬어요. 12·12사태가 왜 일어났는지 나에게 쭉 설명했어요. 내가 다 듣고서 그분한테 그랬어요. 당신 말 들으니까 어떤 점은 좀 이해되는데, 근본적으로 우리 국민 전체를 위한 정권이라는 것이 서부활극 모양으로 돼서는 안 된다. 어느 쪽이 총을 먼저 빼들었느냐에 따라 정권이 왔다갔다 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당신들이 먼저 총을 뽑았기 때문에 실권을 잡은 것 아니요? 나중에 이야기 들어보니까 저한테 왔다가 실망했다고 그래요. 이해를 구하려고 왔다가 실망한 것 같아요.

 

우리는 정말 군이 나라를 위해 국방에 전념하길 바랐어요. 그랬더라면 우리나라가 민주화됐을 겁니다. 그리고 정부가 빨리 민정이양을 해야지, 최규하 대통령이 질질 끌지 않고 민주화 일정을 발표하고 개헌작업을 서둘렀더라면 학생들이 왜 들고일어났겠어요? 그때부터 일이 잘못된 거죠. 난 군인들이 다시 그렇게 하리라고는 전혀 생각 안 했어요. 정말 국민 모두가 그것(민주화)을 바라니까. 군은 이 나라가 다소 혼란스럽더라도 절대 개입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번에 또 군이 들어오면 안 돼요.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현재 군 1개 대대가 전투형태로 데모진압에 투입돼 있다는 말이 들리거든요. 그게 사실이라면 큰일이죠. 절대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돼요. 그런 말 못 들어봤어요?”

 

▼ 저는 아직 못 들어봤습니다만, 요즘 신문에 보도 안 되는 소식이 하도 많아서요. 저희도 다 못 챙깁니다.

오전 오후가 다르니까요.

 

“나도 확인은 못했지만 누구한테 들었어요. 그런 일이 있으면 그건 정말 슬픈 일입니다.”

 

▼ 6월10일 4·13호헌선언 철폐와 박종철군 사건 규탄 대회, 통칭 6·10시위사건이라고 합니다만, 이후 ‘명동사건’(*명동성당에 학생시위대가 대거 모이고 전투경찰이 진압에 나선 사건)이 있고 그러면서 학생들과 시민들이 합세해 전국적으로 저항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신문에 따르면 지방에서 고속도로를 점거해 차를 못 다니게 한다든지 경찰차를 부수고 파출소를 부수는 등의 사태가 발생하고 있어요. 부산가톨릭센터도 점거됐습니다만 학생시위 양상이 과격화하는 것 같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동안 학생들로부터 들은 얘기로는, 정부에서 최루탄을 쏘아대는데 맨주먹으로 어떻게 대항하느냐는 게 학생들 생각입니다. 그러니 이번에도 그 정도가 무슨 폭력이냐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민주화를 위해서는 비폭력이어야 합니다. 학생들도 그것을 경험했어요. 거기(명동성당) 있는 동안 신부님들과 미사를 보고, 함께 시위해보고는 비폭력이 정말 힘 있다는 걸 알게 되죠. 그 다음에 보니까 ‘비폭력! 비폭력!’이 구호처럼 됐어요. 학생들이 바깥의 시민들을 향해 ‘비폭력, 비폭력’을 외쳤어요. 그때 인내하면서 비폭력으로 이 나라의 민주화를 추구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메시지가 학생들에게 전달되었으면 하는 것이 저의 소망이었어요. 이번에도 분명한 것은 폭력이나 과격한 행동이 민주화에 도움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민주화를 원하지 않는 쪽에 탄압의 빌미를 준다는 겁니다.”

 

“최루탄을 쏘니 돌멩이 던지죠”

 

▼ (정권에) 변칙의 구실을 줄 수 있다는 거죠? 또 국민 중 거기에 대해 역겹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국민의 호응을 얻고 정말 성공적으로 민주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비폭력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일시적인 희생이 따르더라도 상대방을 설득하는 데 유리합니다. 물론 (경찰이) 먼저 최루탄을 쏘니까 학생들이 돌멩이를 던지는 거죠. 폭력의 원인은 정부에 있습니다.”

 

▼ 민주국가에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고, 집회도 표현자유의 한 형태입니다.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집회를 열고 정부에 항의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속합니다. 민주국가에서 집회의 자유는 국민의 기본권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허가를 안 받았으니 불법집회라고 규정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야당에서는 정당한 집회를 경찰이 막으니 그게 오히려 불법이라고 항의합니다.

 

“논평할 가치조차 없어요. 불법을 저지른 사람들은 저쪽(정부)이니까요.”

 

▼ 정부는 법을 만들어놓고 실정법으로 집회를 막아버리는 걸요.

 

“저는 예전부터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아요. 인간의 기본권을 본질적으로 억압하는 법을 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언론기본법’ 안에 언론자유를 저해하는 요소가 많은데 악법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런 나쁜 내용을 가진 법을 언론인들이 법이라고 할 수는 없거든요. 통치자들이 억압적 통치수단으로 만들어낸 거죠. 그래놓고 통치자들이 늘 법대로 한다고 하니까 항간에서 비꼬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법대로 법대로’ 하면서 법대로 된 게 뭐 있냐고요. 상대방을 누르기 위해 모든 법을 동원하면서 법대로 한다고 하고, 자기네는 모든 법망을 빠져나가는 식 아닙니까?”

 

▼ 자기들은 법 위에서 법을 초월하고 국민은 악법 밑에 있어라 이런 말씀이죠(웃음).

 

“오늘 우리나라 전체가 이렇게 어렵게 된 요인은 학생들이나 정부 반대 세력이 아니라 현 정부에 있어요. 불법적이고 부정적이며 부도덕한 현 정부에 근원적인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합니다.”

 

▼ 추기경님의 말씀 중 상당부분이 야당의 주장과 일치합니다. 그래서 여권에서는 왜 추기경님이 야당만 지원하느냐고 불만이죠. 이 시점에서 야당에 어떤 조언을 하시겠습니까.

 

“내가 야당을 지원하는 듯한 말을 하면 여권이 힘으로 막 밀어붙이려고 할 것입니다. 나는 의식적으로 야당을 보호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밖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야당이 주장하니까 내가 그것을 주장하는 게 아니라 그것이 옳은 주장이기 때문에 내가 말했을 뿐이에요.”

 

“어둠을 밝히는 횃불”

 

▼ 결과적으로 일치했을 뿐이라는 말씀이군요.

 

“결코 야당을 지원한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정당으로서 정부의 모진 탄압 속에서도 국민에 뿌리를 박고 있는 쪽이 현재 야당이고, 그중에서도 통일민주당이거든요. 자